외전 : Hannah, 2




저런 직원을 고용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제이는 중얼거렸다. 제 커피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직원의 흉을 볼 생각인 것 같았다. 딱히 하는 얘기도 없었다. 태도가 불량하다, 주문을 뭐 저렇게 받냐,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러 단어는 쓰지만 결국 주제는 하나였다. 그 정성 어린 불평으로 제이는 한나의 단비 같은 즐거움을 휘발시키려 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한나가 제이와 똑같은 태도로 그의 흉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한 잔의 커피를 기다리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는 대회가 있다고 하자.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제이 따위가 아니었다. 저놈의 불평은 고작 일개 직원이 불량한 태도를 보였다는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한나는 달랐다. 지금 눈앞의 제이와 눈앞에 없는 제이의 모든 점을 끊임없이 말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시간제한이겠다. 그의 불평은 커피가 식고 새 커피를 원두부터 볶아 완성해야만 겨우 서장이 끝난다.

짜증 나게 하지 마. 그 입 당장 닥치지 않으면 이 카페의 무딘 나이프로 널 조각내서 주방의 튀김기에 던져버릴 거야.”

그래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직 나이프는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커피와 클럽샌드위치쯤이야 오래 기다릴 음식이 아니다. 한나가 들어온 순간부터 비버는 빵을 손질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커피도 데우기만 하면 될 테니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맥주가 잔에 담기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정도였다. 그러니 한나의 협박은 10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이는 전부 알고 있음에도, 전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코웃음을 쳤다. “넌 못 해, 한나. 넌 아주 영특하고, 교활하고, 계산적인 여자니까.” 그러니까 이런 말이, 이런 말을 하기 때문에 한나는 제이가 싫었다. 짜증에서 분노로 감정의 이름이 바뀌고 재킷 안쪽의 권총으로 손을 가져가던 순간이었다.

가게의 묵직한 유리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뒤덮을 한층 더 요란한 구두 소리와 높은 목소리가 가게를 뒤흔들었다.

“우리 귀여운 제리! 일 열심히 하고 있었어? 누나 많이 기다렸지?”

한나는 자신이 출입문을 등지고 있었기에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고 없이 그 파격적인 등장을 눈에 담아버리느라 제이와 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게엔 한나와 제이, 그 두 명의 손님과 주방의 비버 그리고 근처에서 서빙을 기다리는 직원 고작 넷뿐이어서 작은 수다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몸을 사리는 제이마저 입을 열어 “맙소사.” 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앞날의 걱정은 조금도 없고 당장의 쾌락만을 쫓아가는 멍청한 20대 대학생의 모습을 무슨 잡지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것 같다고 했다. 아주 오랜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제이와 한나의 의견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그림 같은 여자는 그림처럼 카페를 누볐다. 높고 얇은 목소리는 아침을 찢는 새소리 같았고 가벼운 몸짓은 벌이 꽃을 찾아 나는 듯했다. 그리곤 그림 같이, 나란히 붙여 놓으면 관광객이 집어 가는 엽서의 사진 같이 여자는 가볍게 날아 제리에게 안겼다. 주방엔 비버가 있고, 한나의 눈앞엔 제이가 있다. 그렇다면 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여자의 얇은 허리를 양손으로 감싸 들었다. 물방울무늬의 스커트 자락이 팔락이고 긴 금발이 허공을 감았다. 이 카페가 아니라 사람이 잔뜩 모인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두 사람은 지금 하는 것처럼 깊은 키스를 나눌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돈이 될 그림일까. 쏟아지는 햇볕 아래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연인과 인파 사이에서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어느 쪽이든 저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팔릴 거라고 한나는 생각했다.

미소가 지독히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한나만큼이나 권태로운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 제리는 벨이 울리자마자 모든 근육을 깨우기 시작했다. 한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미소를 지었고 들려주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긴 손가락으로 여자의 머리를 넘겨주고 목울대를 울려가며 맞장구를 치고 남들 보기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지 제 허벅지 위에 여자를 앉힌다. 요즘 애들이란, 제이가 고개를 저으며 구경하길 그만두었지만 한나는 이를 알지 못했다. 제이 따위의 기분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언제 끝나? 나보다 일찍 나갔잖아.”

“4시면 끝나. 집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여기서 같이 기다리면 안 돼? 커피 시킬게.”

“파티 준비는? 오늘이잖아, 드레스 안 입을 거야?”

“기억하고 있었구나, 제리! 갈 거야? 갈 거지?”

“당연히 가야지. 나 뭐 입을까?”

“제일 예쁜 거. 전에 사준 거.”

여자는 쉴 새 없이 제리의 뺨과 목덜미에 키스를 퍼부었다. 비버가 샌드위치 준비가 다 되었다며 불러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버! 제리가 파티에 같이 간대요, 너무 예쁘겠죠!” 라며 무슨 동네 친한 삼촌 대하듯 자랑이나 하고 있다. 알았으니까 파티 갈 돈을 벌고 싶다면 서빙이나 제대로 하라고 결국 혼이 난다. 이번엔 제리가 여자의 뺨에 입을 맞추고 나지막이 달래준다. 손님도 없잖아, 이거 하나만. 숨소리가 섞여 든 그의 목소리가 여자의 귓가를 스치고 나서야 카페의 소란은 잦아든다.

제이는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비버가 샌드위치를 완성하기도 전에 저 꼴을 보기 싫어서라도 무슨 커피 한 잔을 이렇게 기다려서 마시느냐고 클레임을 걸 작정이었다.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고 제이를 말린 한나였지만 그 역시 생각은 같았다. 추천하길래 기껏 시켰더니, 김빠진 맥주로 대체 무슨 기분을 풀겠냐고 화를 내볼까. 그럼 그토록 화사하던 얼굴에 당혹과 불안, 절망, 곤혹, 이런 걸 드리울까. 그러나 곧 그럴 남자가 아닐 것임을 한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여자를 떠난 제리는 샌드위치와 커피, 그리고 맥주가 든 쟁반을 들고 오면서 그들이 아는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도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제이가 커피가 식었다는 작은 클레임을 걸긴 했지만 “데워드려요?” 라는 짧은 응대에 말을 잇기를 그만두었다. 맥주의 탄산은 살아있었고 컵을 잡은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시원했다.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가 끝날 때까지 한나는 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제이는 다시 여자에게 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아쉽다,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한나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제리를 불렀다.

여기, 하는 작은 외침에 제리가 다시 몸을 돌렸다. 한나는 그를 부른 손가락 사이에 50달러를 끼웠다.

“이름이 제리야?”

남자는 천천히 다가와 조금 전 한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돼요.”

“별명인가?”

“비슷해요.”

“이름은?”

“궁금해요?”

제리, 남자의 뺨이 한나의 귓가에 바짝 다가왔다. 두 손은 제 허리 아래 뒤로 돌려 얌전히 모은 채다. 30달러까진 감사히 받겠다만 50달러부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나는 여자가 앉은 자리로 눈을 돌렸다. 비버의 카페엔 파티션이 얼마 없다. 여자는 남자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한나의 테이블이 잘 보이는 자리에 일부러 앉았을 것이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린 목소리로 높게 웃던 여자는 그 모든 것이 수십 년은 족히 지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시선으로 한나를 노려보았다. 세상에, 무서워라.

한나는 다시 눈을 돌려 남자의 가슴을 보았다. RET. L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셔츠 주머니에 50달러를 밀어 넣고, 목깃을 당겨 남자의 자세를 좀 더 낮춘다. 그리고 남자만큼이나 낮게 속삭였다.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나도 별명 하나 주고 싶은데.”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한나의 눈에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귓가 아래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뺨과 턱 정도뿐이다. 등이 한 번, 작게 오르내리고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일이 좀 있어서.”

한나는 잡고 있던 목깃을 놓을 뻔했다. 거절했다. 고작 카페의 웨이터 일을 하는 남자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칸델라의 이름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 이름이 한나가 아닌 한나의 아버지를 가리킬 때, 한나는 그 이름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다. 프라우드의 이름을 업을 때도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칸델라의 이름이 온전히 한나의 것이 되었을 때, 그는 그 이름을 가지고 프라우드를 찾아갔다. 거래는 훌륭했다. 어느 쪽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단지 경험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얻을 줄만 알았던 한나와 잃어도 보았던 제이콥 프라우드는 조금 다른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역시 거절은 되지 못했다. 색다른 부담이라고 할까, 상냥한 족쇄라고 할까, 눈앞의 제이콥 프라우드 주니어를 떠맡는 것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대가로서 나쁘지 않다고 만족했다.

무슨 대단한 파티길래 10달러짜리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에서 한 번에 80달러씩 팁으로 꽂아주는 사람의 제안을 거절할까. 한나는 깃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비싸게 구네, 얼마가 더 필요한데? 그러자 어깨를 들썩이며 남자가 웃는다. 묶이지 않는 잔머리가 흔들리며 얼굴 언저리를 간지럽힌다. “한나, 들어봐요.” 그러나 살살 긁어내는 듯한 낮은 목소리만큼은 되지 못한다.

“난 예약제거든요. 이거 철저하게 지켜야지, 그래야 좀 사고 싶지. 안 그래요?”

길게 빠진 얇은 눈매를 갈색 눈동자가 길게 가로지른다. 숨소리만이 겨우 지나갈 만큼의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부옇게 흐려져 두 갈래로 뜬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 모를 곳에서 다시 한나에게로 다가왔다. 한나는 제이를 떠맡던 순간을 떠올렸다. 한나를 환영하는 척하던 프라우드의 얼음장 같던 시선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한나의 유리창 네 귀퉁이를 두드렸다. 그러나 이 남자의 것은, 햇빛을 받아 금빛처럼도 보이는 남자의 눈은, 그런 수고 따위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한나가 50달러를 집어넣은 셔츠의 주머니를 손끝으로 살짝 벌렸다. 살결이 천을 지나는 소리가 진동으로 느껴진다. 이번 주는 바쁘고, 다음 주 어때요?” L 자수가 박힌 부근의 주머니 끝자락을 남자가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연락할게요.”

주머니 안으로 한나의 명함이 들어갔다. 남자가 떠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내내 휴대 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던 제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 아비를 닮은 눈동자로 한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잘 모르겠다. 그 이유에서였다. “좋아?” 제이가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좋은 건가? 오히려 묻고 싶었다. 나 지금 좋아 보이니?

일단 맥주를 마시자. 여전히 탄산이 살아 있는 맥주를 마시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제리, 못된 제리,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럴 수 있어. 숨길 생각 없는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조용한 카페를 다시 찢어냈다. 웃음이 터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아까보다도 훨씬 더 큰 소리로 배를 울려 웃었다. 제이가 맞았다. 제법,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