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군 중앙수도군 특수파병부대 동아시아 24팀 비렛 리 수습 포인터. 그게 비렛이 군복과 함께 받은 새 이름이다.
“길어.”
“안 길어요. 외우세요.”
유니폼은 훌륭했다. 조금 덧붙이자면 훌륭한 유니폼을 베테랑 메이드팀의 손길로 한겹 한겹 입힌 비렛은 제법 볼만했다. 물론 벨트도 없이 청바지만 대충 입은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루는 그렇지 않았다. 워낙 그렇게 지내온 탓일까, 단정하게 머리를 다듬고 제복을 갖춰 입은 모습이 훨씬 좋아 보인다. 훈련만 잘 시키면 꽤 괜찮은 홍보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가 있다. 비루는 메이드팀이 해산하자마자 냅다 비렛에게 서류 한 묶음을 건넸다. 거기엔 비렛이 새로 받은 이름과 함께 적당히 검열된 이번 사건의 조사 현황이 정갈한 영어로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종이를 넘기며 비렛이 물었고 동시에 비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드럽고 묵직한 푸른 망토가 그의 어깨와 등을 따라 바닷물결처럼 넘실거렸다. 아니, 폼만 잡지 말고, 뭐냐니까. 비렛의 군복엔 망토 같은 건 없었다. 허리 아래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재킷은 비루의 몸짓을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간결했다.
괜히 더 약이 오른다. 반드시 대답을 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받은 서류를 흔들어대며 재촉을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비루는 제 뒤에 서 있던 남자와 함께 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곤 대답 대신 여전히 폼을 잔뜩 잡은 투로 말을 툭, 던졌다.
“읽으면서 따라오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말을 들으면 비렛 리가 아니었다.
비렛은, 솔직하게 말해서, 비루라는 남자를 모른다. 드웬이야 자기가 생사를 넘나들고 있을 때 저 작자랑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수다라도 떨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비렛은 아니었다. 드웬이 장군님이라 부르니까 뭐 그런가보다, 저 사람이 우릴 도와준 거라고 하니까 그래 그런가보다,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이었다. 존경심도 없고 감사함도 없다. 그가 돈 자랑에 미쳐 엄한 사람 여럿 고생시키는 허영꾼이라면 비웃음은 더해줄 수 있다.
돈을 처바른 방을 나가면서 돈을 처바른 복도를 걸을 때까지 비루는 제 손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문은 비렛과 비슷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신 열어주었고 펄럭이는 망토 자락을 정리하는 건 새로 따라붙은 밝은 갈색 머리의 남자였다. 비루가 움직이는 건 오직 성큼성큼 걸어가는 다리와,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주둥아리뿐이다. “바깥에 오래 계셔서 생소하시겠지만,” 그렇게 시작하는 말까지 재수 없다. 예, 생소합니다. 너무 생소해서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리겠다. 비렛은 멀찌감치 떨어져 비루의 뒤를 따라가며 건네받은 서류를 들춰보았다. 쪽지가 하나 있었다. 종이는 질이 좋았고, 글씨는 급하게 썼는지 잉크가 조금 번져 있었다.
‘당신이 바깥의 사람인 걸 들키면 안 됩니다. 절 부를 땐 각하나 총사령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주세요.’
웃음이 나왔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복도를 걸으며 비렛은 작게 웃음을 던졌다. “각하.” 머리 위로 한참을 더 솟아오른 천장부터 흐르듯 떨어지는 커튼이나, 먼지 하나 없이 빛이 나는 난간이 길게 이어진 수많은 계단이나, 띄엄띄엄 늘어져서 비루가 지나가면 절도있게 경례를 보내는 경비원들이나, 이 우습지도 않은 소꿉놀이에는 제법 잘 어울렸다. 만약 조사한다는 저택도 어느 불쌍한 부랑자의 안식처라면 비렛은 그 어느 일도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재수가 없었다. 그래서 웃었고, 쪽지를 적당히 무시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비루도 그를 적당히 무시해야 했다. 지금까지 비렛이 그랬다고 느낀 것처럼.
“…리 수습 포인터?”
비렛의 비웃음은 작은 혼잣말이었다. 이 으리으리한 복도에서 그 작은 울림은 결코 부자 친구들에겐 닿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비루가 하던 말을 멈추며 부름인 듯 질문인 듯 대답했다. 어쩜 이리도 섬세하고 연약하고 예민한 부자인지. 각하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기는 있나 보다. 비렛은 참을 수 없는 비웃음을 숨처럼 흘려내며 손사래를 쳤다. “아무것도 아냐, 계속 해.” 그러면서 쪽지가 숨어 있던 서류를 마저 넘겼다. 다른 게 더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였다. 설마 식사할 때 쓸 식기의 순서를 적어둔 건 아니겠지. 애써 키득거리는 소리를 참으며 세심하게 자료를 살피는데 발치의 그림자가 조금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어둡다. 무언가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비렛은 서류에 고정했던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잿빛의 긴 코트를 입은 밝은 갈색 머리의 남자가 사나운 표정을 하고 그의 앞에 바짝 서 있었다. 아까 복도로 나오면서부터 알짱거리던 놈이다. 남자 얼굴 외우는 취미는 없는데, 비루부터 시작해서 나란히 망토를 두른 남자에 이어 이 험악한 양반까지 칙칙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비렛은 예의를 아는 사람이니까. 정중하게 이름이라도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비렛의 “이건 뭐야?”라는 인사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험악한 남자는 표정만큼이나 사나운 목소리로 선수를 쳤다.
“‘계속 해’?”
대체 무슨 말인지. 비렛은 남자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똑같이 인상을 구겨야 했다. 그러다 떠올렸다. 아까 자기가 했던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라 깜박 잊고 있었는데 그걸 이렇게 짚어준다. 어이가 없어서. 서로의 눈높이는 비슷했다. 남자의 뼈대가 좀 더 굵다는 것만 제외하면 못 해볼 판은 아니다. 비렛은 결정해야 했다. 이 낯선 곳에서 싸움을 시작할지, 일단 접고 들어갈지.
“하던 얘기 계속하라고…….”
“이 새끼가 정신 못 차려?”
그리고 일단 접고 들어가자는 선택을 하고 수 초도 지나지 않아 깊게 후회했다.
“이 위아래도 없는 새끼가 대가리도 파병 갔나, 챙겨주시면 챙겨주시는 만큼 감사합니다 하고 엎드려야지. 총사령관 각하가 네 친구야? 너 별 달았어?”
뒤통수가 얼얼하다 싶더니 이번엔 정강이가 욱신거린다. 거기서 주저앉지 말아야 했는데 이런 충격은 제법 오랜만인지라, 비렛은 전략 따위를 세울 틈도 얻지 못했다. 쏟아지는 폭력 속에서 때로는 소리보다 아픔이 먼저 찾아온다. 손길은 리드미컬했고, 정확했고, 강했다.
정신 차리라며. 지금 당신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말로 해, 말로…! 말…!”
“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넌 새끼야, 임무 끝나고 목숨 붙어 있으면 나 찾아와라. 밖에선 상상도 못 한 주둥아리 교육 오늘 다져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째서 이런 일이. 어설픈 가드를 올리며 비렛은 이젠 까마득해진 1분 전을 떠올렸다. 그냥 선빵을 칠 걸 그랬다. 아니지, 사람을 이렇게 패는 걸 보면 오히려 돌아온 카운터에 나자빠졌을지도 모르겠다. 비렛은 남자의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비루를 눈빛으로 부르며, 외치기 시작했다.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하스는 그의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게 서류 잘 보라고 했잖아요.”
“봤어.”
“‘잘’ 보라고요. …장난이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너 같으면 진지하게 생각했겠냐?”
물론 지금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갈색 머리의 미친놈—비루는 그를 하스 대원이라고 불렀지만 비렛은 그런 사람다운 호칭을 그에게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이 북 대신 비렛을 신나게 두드린 탓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신선한 경험이 훨씬 더 큰 원인이었다.
복도는 더 구경할 새가 없었다. 미친놈이 그렇게 난타를 해대는데 무슨 여유가 있으랴.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리는 게 그의 최선이었다. 이렇게 맞아본 것도 오랜만이다. 아마 드웬과 함께 지내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차리라는 정신도 얼얼해질 때쯤 미친놈의 주절거림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하면 되었지 않나.” 부드러운 청년의 목소리가 중후한 말투로 폭력을 가로막았다. 물론 미친놈이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놈 봐주면 상급자 무서운 줄 모르고 또 나댑니다.” 숨 한번 몰아쉬지 않고 또박또박 대꾸하는 게 정작 말하는 본인도 딱히 상급자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히 날아들던 발길질은 멈췄지만 말이다. 그 정도가 미친놈이 차릴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가 아닐까. 덕분에 비렛은 가드 사이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각하께서 특별히 데려온 병사가 아닌가. 파병부대는 분위기나 관습이 다양한 곳이 많으니, 자네가 이번만 눈감아줘. 내 쪽에서도 타일러둘게.”
“24팀 그놈들 예의 없는 걸 견문이 넓다고 하는 자식들이지 않습니까. 너무 봐주십니다.”
“자네야말로 품위 없이. 시간이 없네, 하스 중급 하운드. 자네가 해야 할 일을 하게.”
그것은 그야말로 나그네의 옷을 벗긴 햇살, 말 그대로 빛이었다. 거지 같은 폭풍을 몰아내고 짓는 미소는 눈부셨고 내미는 손은 세상에 더 없을 만큼 따뜻했다. 묵직하게 흔들리는 푸른 커튼 사이로 비쳐 드는 햇빛은 마법처럼 그의 금발을 더욱 반짝이게, 벽안을 더욱 푸르게 비춰주었다.
일어나려무나. 빛이 말했다. 비렛은 빛이 건넨 손을 양손으로 잡으며 생각했다. 천사다. 이 남자는 지옥에서 날 구해줄 천사다. 그는 비렛을 일으켜 옷의 먼지를 털어주고, 기다란 복도를 지나 검푸른 카펫이 깔린 계단을 우아하게 내려가, 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문을 지나 널찍한 정원을 건너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로 비렛을 안내했다.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로. 비렛은 그쯤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어쨌든, 덕분에 말을 맞춰야 한다는 건 잘 알았겠죠. 제발 내가 하자는 대로 좀 따라와요.”
“무슨 말. 몇 번 말이 빨리 달릴지? 마찬데?”
제정신인가. 비루가 중얼거렸고 천사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각하께선 당신을 걱정해서 이러는 거니까 임무가 정리될 때까지만이라도 부탁한다고. 그 나긋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비렛은 못 이기는 척 말꼬리 잡기를 그만두었다. 쟤가 예뻐서가 아니다. 천사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는 자신을 닐 에드먼드라고 소개했다. “미카엘이 아니었다니.”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에 저도 모르게 소리 내 탄식해 버렸다. 그리고 자비로운 천사 닐은 그마저도 너그럽게 웃어넘겼다. 이젠 아예 눈까지 질끈 감아버린 비루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국민성인가? 드웬도 그렇고, 각하 나으리께서도 뭐 하나 조금 뜻대로 안 된다 싶으면 금방 인상을 잔뜩 구긴다. 저런 놈 따라다니는 게 피곤하지도 않은지, 지금은 비렛의 멱살 대신 마차의 고삐를 쥐고 있는 하스도 그렇고 어쩜 그렇게 말들을 잘 듣는지 모르겠다. 가려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짜증을 내는 비루에게 똑같이 짜증을 내며 비렛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오직 닐만이(물론 마차 안에는 비렛과 비루, 그리고 닐 셋뿐이었지만) 미소로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무슨 말씀을 어떻게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각하께선 당신을 원래 계시던 곳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시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납치를 해 놓고?”
“모순적이죠. 그런 면모가 있으십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루가 불평을 했다. 그 어투가 부하에게 신경질을 부린다기보다는 부모나 형제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과 더 닮아있다. 더 가관인 건 그걸 받아주는 닐의 태도였다. 그것은, 그야말로 비렛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막냇자식을 달래는 자상한 아버지나 삼촌, 큰형… 뭐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의 완벽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지켜보면 저 거추장스러운 망토 안에서 사탕이라도 꺼내줄 기세다.
뭐지, 무슨 사이지. 둘이 닮은 구석이라고는 팔다리가 둘씩 달려있고 손가락이 다섯 개라는 것 정도밖에 없다. 입양된 형제인가, 그 가설도 잠시 세워봤지만 성부터 달랐으며, 그래서 누가 입양된 쪽이고 누가 형이냐고. 그 어느 하나 예측을 할 수가 없다. 비렛은 잠시 이어진 두 사람의 짧은 잡담을 지켜보다(“전 그런 점이 각하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나도 안 하고요.”“좀 더 자신을 너그럽게 인정해 보세요.”“그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흔들거리는 마차의 좌석에 몸을 편히 기댔다. 차라리 양을 그려달라며 귀찮게 구는 어린 왕자가 훨씬 상식적이겠다.
“들으셨겠지만, 그 저택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장병들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래. 대충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지.”
“원래 벌써 해야 했던 얘긴데 당신이 꾸물거리느라 늦었죠. 제발 진지하게 좀 들어주세요.”
“나 진지해. 네가 이… 중앙수도군? 의 총지휘관이라는 것만큼.”
“기억하시니 다행이네요. 이제야 이야기가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
바닥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세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제는 모든 일의 원흉인 바로 ‘그 저택’이었다.
“상식적으로 누가 살고 있지 않겠냐? 노숙자라든가.”
“상식적으로 그 정도 규모의 저택을 아무도 모르게 짓는 것부터 불가능하겠죠. 창문 갯수만 해도 십수 개는 된다고 하고, 지붕도 높게 쌓은 3층 저택인데 어떻게 하룻밤 만에 쌓겠어요.”
“아무도 못 봤다면 가능하겠지.”
“사람이 자주 다니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치안유지대 대원들이 순찰하면서 발견했고요.”
허가 없이 건설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했다. 처음 산속에서 저택을 발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병사는 교대 시간이 되어도 복귀하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다른 병사들이 그들의 근무지로 향했고, 역시 복귀하지 않았다. 습격인가? 부대는 수색팀을 보내 그들을 찾았다. 돌아온 보고는 이랬다. ‘미신고 건축물 발견, 수색차 진입한 인원의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그 누구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안에 들어간 사람 중 아무도 나오지 못했어요. 무전도 보디캠도 내부로 들어가면 무용지물입니다.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기도 했고, 땅굴을 파서 지하로 접근해 보기도 했어요.”
“핸드폰은?”
“기지국의 신호가 닿지 않는 곳이라 저택이 아니더라도 무용지물입니다. 카메라로 내부 상황을 녹화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되돌아 나온 핸드폰이 없어서요.”
갖고 있는 사람도 없지만요. 비루가 작게 덧붙였다.
“그럼 소릴 지르라고 해.”
“그게 됐으면 당신까지 잡아 왔겠습니까?”
“잡아 온 건 부정 안 하는군.”
“닐, 결심했습니다. 천장을 부수죠. 비렛을 매달아 그 위로 내려보낼 겁니다. 사지를 묶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놓고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하다 하다 종이컵으로 전화기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일부러 가정에 충실한 장병을 보내 반드시 복귀하라고 으름장까지 놓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장병은 대답이 없었다. 종이컵을 이은 명주실만 끊어져 돌아왔다.
탈영 같은 게 아니었다. 그것이 의심이 아닌 확신으로 자리 잡기까지 열아홉의 실종이 있었다.
“십만 프랑 짜리 집이 아니라 보아뱀 뱃속이었군.”
“적군의 소행이겠지요. 그들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편에 선 세력일 겁니다. 회유를 했든 인질로 잡았든 단순히 머릿수를 줄였든, 가장 가능성이 커요.”
“그걸 도우라고 잡아 온 게 나라고?”
밝혀진 정보는 거의 없었다. 비루가 알고 있는 건 저택의 위치와 그 안에 들어간 이들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 겉보기에 그렇게 규모가 크진 않고 생긴 지 두어 달이 조금 넘어갔을 뿐인데 꼭 몇 번의 계절을 지낸 것처럼 낡아 있다는 것 정도였다.
터뜨리자. 누군가 의견을 냈다. 화약을 사용해서 건물을 부수면 제아무리 수를 쓰는 놈이라 해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화약이 위험하다면 하다못해 불이라도 놓자고. 그렇게 말했지만 비루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생명이다. 이래서야 부대를 잃고도 손가락만 빨겠다는 불평이 돌아왔다.
그래서 비루는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해도 시도는 하지 못할 것을 하나 생각해 냈다.
“비렛 당신은 어느 쪽도 아니잖아요. 우리 쪽도, 저쪽도.”
“내가 저쪽이랑 한 편 먹으면?”
“비렛.” 차분하게 말을 잇던 비루가 비렛을 똑바로 마주했다. “말했잖아요. 당신은 다루기 편하다고.”